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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소개

천년의 향기 휘날리는 적멸보궁 도리사

아도화상과 향

 

신라에 최초로 향 문화와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

  신라불교초전 성사 아도화상(阿道和尙)은 고구려의 스님으로 위나라 아굴마(阿崛摩)를 부친, 고구려 고도녕(高道寧)을 모친으로 정월 19일에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아도라 이름 하였습니다.

  16세에 중국 위나라의 현창화상(玄暢) 밑에서 득도 수학하였으며, 다시 고구려로 돌아와 어머니 고도녕의 권유로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와 일선부 도개의 모례장자(털례)의 굴실에 머물며 낮에는 장자의 일을 돕고 밤에는 경을 강론하여 불법(佛法)을 선양(宣揚)하였습니다.

  이에 감화받은 모례장자와 그의 여동생인 사시(史侍)가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바새와 우바이가 됩니다.

  이때, 신라왕실에 기이한 물건이 전해지는데 어느 누구도 아는 이가 없어 아도화상에 묻자 “이것은 향이라는 것으로 불을 피우면 신비로운 향이 나는데 이것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나의 여식인 성국공주가 병이 들었으니 낫게 할 수 있는가” 라며 부탁을 하자 아도는 일주일간 향을 피워 올리고 정성스럽게 부처님께 기도하여 공주의 병을 낫게 합니다.

  이후 불교의 씨앗이 될 터를 찾아 떠나며 모례에게 “칡넝쿨이 집 담을 넘어오거든 그 넝쿨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몇 년 후 담을 넘어온 넝쿨을 따라가자 바위에 아도화상이 앉아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모례가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겨울에 이곳을 지나는데 복숭아 꽃과 오얏 꽃이 핀 것을 보고 길지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절을 짓고자 하오.” 이 말을 들은 모례의 시주로 절을 짓게 되고 절 이름은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으며, 그때가 417년 눌지왕 때입니다. 그 후 도리사 서대에서 황악산 아래에 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절을 짓도록 하였는데,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바로 가리켰다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하게 됩니다.

  화상은 도리사 뒤편 금수굴에서 입적하였으며, 화상의 전법은 법흥왕(法興王)때에 이르러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받게 되는 계기가 되고, 신라의 문화가 불교로 인해 화려하게 꽃피우는 그 시작이 되었습니다.